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채, 타인에 의해 얻어진 가치에 대한 무감함.
충분한 댓가를 치루지 못한 탓일까?
고스톱판에 내다판 광값만큼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한 채 전도된 가치속에 허우적대는 군상속의 내가 부끄럽다.
후진 사회는 새로운 형태를 보탤 때 그 초기 단계가 아니라(발전의 각 시기도 아닌) 완성된 최종 형태를 취한다.
실제로 보면 휠씬 더 나아간다는 것도 알 수 있다. 후진 사회는 원조 국가들에 존재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“이상형”을 모방한다.
후진 사회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발전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 채택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. 후진사회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가 선진 사회에서보다 더 완벽하게 드러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.
선진 사회에서는 새로운 형태라는 것이 “이상형”의 근사값으로만 존재한다. 생각해 보라. 이상형의 근사값이라는 게 조금씩 점차로 도래했으며, 그렇게 역사적 가능성의 틀을 확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- The Social and Political Thought of Leon Trotsky 중에서.